개강 한 달. 간만에 뻘글.
2012/03/27 댓글 남기기
12월 초. 그러니까 여행 직후 즈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막 돌아온 한국은 낯익은 모습과 종종 발견되는 낯선 변화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여행 막바지에는 거의 대부분 ‘한국에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곤 했는데, 대부분 무엇을 공부할 지, 무엇을 행할 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뒤엉킨 공간 서울에서 가장 먼저 나선 일은 부채탕감이었다. 아직 결제하지 못 한 카드값(귀국행 비행기표)과 학원 선생님께 가불받은 돈이 문제였다. 대치동에 나가서 입시 막바지 알바를 뛰었고,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월에는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경제학 기초과목 두 과목을 재수강했는데, 반절 정도만 겨우 제대로 마무리한 상태였다. 문제는 2월이었다. 2월 동안 무얼 하며 지낼 것인가, 무얼 공부할 것인가가 학교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1년의 방향을 잡아줄 것이라 여겼다. 몇 가지 목표가 있었지만, 사실 그 중에 무언가를 뚜렷하게 해결해낸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행 때의 기억을 모두 글로 정리하겠다는 목적도, 글쓰기의 어려움에 직면해 중지된 상태다. 한 여행지의 글을 정리하는 데 3~4일 간의 글감 재구성과 기억 속 파편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한 경험이 아닌 직관적인 분석을 글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으레 성찰은 존재하지만 그걸 분석해 낼 이론이나 경험이 일천한 나로서는 써재낀 글이 자기검열마저 통과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중도엔 오래 앉아 있었지만 뭐라 결과물을 딱히 내 놓을 만한 건 없었다.
3월이 되면서 몇 가지 추상적인 목표를 잡았다. 첫째,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에 대한 나 자신의 절박함을 테스트 해야 했다. 공부는 현재 하나의 옵션에 불과한데, 이 게 순전히 ‘공부하고 성찰하는 삶’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교수나 먹물 등의 ‘학식이라는 이름의 권위’를 원하는 건지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내가 공부와 어울리는 인간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색이라는 이름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3개월 조금 넘게 공부 자체를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인간형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했다. 그렇게 1개월이 지나가고, 아직까지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레퍼런스를 읽는 능력이 아직 일천해서 자료의 부족, 참고 대상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영어권 연구의 방대함에 놀라면서, 동시에 영어권 연구를 제대로 독해해내지 못하는 내가 무척이나 미웠다. 여행하며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카데믹한 글을 독해하는 데에는 아직 경험이 전무했던 것도 어려움이었다. 교수님들의 강의는 좋지만, 사실 깊이 있게 뭔가를 깨닫는다는 느낌보다는 학번 빨로, 배워먹고 들어먹은 일부 사회학적 어휘로 ‘쪽팔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실제로도 지난 주에 ‘내가 왜 이렇게 아는 척 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정도로 빈약한 기초 위에 자꾸 모래성을 쌓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점에서는 고민의 원천적인 측면, 그리고 궁금해하고 계속 공부해 봐야 하는 측면을 조금 찾은 것 같아 아예 공염불을 외는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차적으로 18~20세기 역사에 대한 반복적인 재구성 탓에, 결국 어떤 시작 지점, 혹은 어떤 의심의 공통 지점에 모더니티를 모셔두게 되었다는 건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모더니티의 모호한 뜻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특정 인식과 고민의 시작점에 모더니티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끼치려는지 들춰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게 일종의 환원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문제지만, 철학이나 사상의 후차적 현상 정도로만 생각했던 모더니티가 일종의 경계이자 선명한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미약하게나마 발전이라면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사회학을 비롯한 현대 사상의 이론과 담론이 다르게 정리되기 시작했고, 그 경계를 바탕으로 읽는 텍스트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1년 반의 공백(그 사이에 제대로 된 독서라곤 짐멜과 폴라니 정도가 전부) 사이에 일어난 이 변화가 여행 때문인지, 아니면 논술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친 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언어를 통해 텍스트 너머에 있는 분위기와 인식의 기반을 추측하게 된다는 건 나이를 허투로 먹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스럽다. 물론 이 게 고급 문해력의 향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이런 변화가 공부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사실이다.
여행이 공부에 끼친 직접적인 영향은 아무래도 대부분의 상황을 전지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문화권을 가로지르면서, 차이와 보편 사이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터라 어떤 이론을 접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중동에서, 유럽에서, 북미에서 어떻게 서로 다르게 적용될 것인가를 (상세하게 추측하진 못 하더라도) ‘일단 각 문화별로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고 바라보게 된다. 이 지점에서는 특히 북미와 남미 여행이 주효했다. 산업사회의 끝자락이라고(여행 중간에 그렇게 느꼈다. 많은 현지인-특히 미국인-들은 그렇게 바라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느꼈던 미국과 근대 자체가 식민의 역사에서 시작한 남미 사이에는 거의 모든 사회 과학적 관점과 이슈가 서로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제2, 3세계도 아닌, 그렇다고 서구 주류국가도 아닌 한국이라는 땅에서, 서울에 대한 관점만으로 세상을 보던 일상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건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있다. 물론, 동시에 추가 자료를 찾다가 영어 레퍼런스 앞에서 좌절하고 마는 현상도 동시에 느껴야 하지만(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정말정말정말 절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여행이 달라지리라, 다르게 재구성되리라 뻔히 예상하고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순간에도 조금씩 그 기억들은 하나 둘 지금 읽는 텍스트들과 함께 달리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비마저 재구성되기 일쑤다. 그래서 이방인의 시선은 텍스트로 보충되는 동시에 텍스트를 통해 왜곡된다. 텍스트의 힘을 믿지만 동시에 텍스트의 기만과 위선도 걱정스럽다. 여기에 진로를 빨리 결정해야 하지만, 아직 이 텍스트 속에서의 삶에 대해 제대로 포기하지도, 확고히 신뢰하지고 못 하는 상황이 겹친다. 일단 3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몇몇 불안의 씨앗과, 몇몇 주변의 이해관계가 아직 상존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일단은 그렇게 6월까지 보내고나서, 결정은 그 때 해도 늦지 않을 거라 (아직은) 믿어본다.